[커리어 노트 75] 이민자, 멘탈이 약해서가 아니다.

EK
4 min readJun 4, 2022
Image by Lucija Rasonja from Pixabay

미국에서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렵게 잡은 첫 직장은 블랙웰(Blackwell)이라는 컨설팅 회사였고 내게 배당된 클라이언트는 미국 최대 보험회사인 스테이트 팜(State Farm) 이었다. 뭔가 근사하게 들리지만 현실은 그다지 핑크빛은 아니었다.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합법적인 체류 신분 확보이다. 미국의 경우 유학생은 학생비자(F1)을 받게 되고 이는 학생 신분을 유지해야 보장되는 체류 신분이다. 등록금 마련을 못하거나 학사 과정에서 누락이 되면 바로 체류 신분에 문제가 발생하고 그러면 출국을 해야 한다. 박사과정 중 지도 교수와 트러블이 생겨서 학생비자 연장이 곤란해진 케이스를 본 적도 있다. 그러니 체류 신분에 문제가 생기거나 추방 당할 여지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세상에, 추방이라니… 살면서 추방에 대한 걱정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졸업과 동시에 고국으로 귀국을 한다면 신분에 대한 걱정은 고려 사항이 아니지만 미국에 계속 체류를 하려고 한다면 합법적인 체류 신분은 항상 최전선의 숙제이다. F1 유학생들에게 학업에서 배운 내용을 실무에 적용해 보고 취업 비자로 전환하는 데 시간을 주고자 OPT(Optional Practical Training)라는 유예 기간을 주는 제도가 있다. 보통은 OPT를 취득하고 이 기간에 취업비자를 스폰서해주는 직장을 잡아서 취업비자로 신분변경을 한다. 그래서 유학생들은 졸업 후 바로 취업이 안되고 이 OPT 기간이 줄어들면 압박을 받게 된다. 체류 신분에 대한 압박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이다.

나는 1월에 졸업을 했는데 여전히 취업이 안된 상태였다. 여러 번의 인터뷰 실패 끝에 드디어 취업 비자를 스폰서 해준다는 회사에서 오퍼를 받았다. 연봉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거리도 멀어서 주말부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취업 비자를 스폰서 해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구원자 같은 기분이었으니… 출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는데 나처럼 스테이트 팜으로 파견근무를 시작한 직원들은 모두 외국인 직원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스태핑 회사였던 것이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6월 어느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이 파견되어 근무 중이던 동료가 HR 면담에 불려가더니 그 뒤로 돌아오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그리곤 그 다음날 누군가 박스 하나를 들고 와서 그녀의 짐을 모두 정리해서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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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

Everyday learner, passionate for humans, curious for the world. Working at Google, connecting dots…